사는이야기/주절주절

바들바들 떨면서 먹는 겨울 냉면 맛!

越山 2016. 3. 1. 18:32



이렇게 눈이 펄펄 내릴때 산에 올라 온몸으로 눈을 맞이해야하건만 약속때문에 미친듯이 내리는 눈을 눈으로만 보는것이 매우 안타깝다. 지난 겨울은 눈 가뭄이다. 눈에 목말라 있던지라 약속을 깨고 그냥 설산으로 내빼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기가 고통스럽다. 그런 고통을 아내가 해준 냉면 한사발로 마음을 씻어내니 다소 위로가 된다.


지난 설 차례때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삶은 육수를 섞어 만든 냉면 육수. 언제 냉면을 맛을 볼까 생각했는데 마침 눈이 펄펄내린 날에 고대했던 냉면 한사발을 들이키니 설산에 오르지 못한 뜨거운 화기?가 가라 앉는다.



할아버지, 아버지가 평북 출신이라 어릴때 냉면을 자주 먹었다. 고모에게 전수받은 이북식 냉면을 어머니가 맛나게 잘해주셨다. 좀더 커서는 어머니가 해준 냉면을 먹다가 유명한 냉면집 냉면을 먹어보면 입맛만 버린듯 싶은거다. 어머니 육수 맛이 입에 베어서 그런지 냉면집 육수가 시들해졌다.


어릴적 어른과 길을 가다가 긴 대나무에 매달린 빨간 깃발만 보면 땡깡을 놓더라도 필히 먹고가야할 정도로 냉면을 좋아했던 나다. 뜨거운 육수를 사기컵에 따라 간장을 몇 방울 타 젓가락으로 젓어 마셨던 그맛은 지금도 잊지못한다. 지금도 어쩌다 그런 냉면집에 가면 뜨거운 육수를 간장을 타서 몇 컵씩 마신다. 요즘은 뜨거운 육수가 나오는 냉면집이 별로 없다보니 예전 고유의 냉면 맛이 많이 사라지고 그래서 그런지 냉면 육수에 대한 믿음이 전과 같지 않다.



그러다 보니 고모로 부터 전수받은 어머니의 탁월한 냉면 맛 그대로 아내까지 잇어졌다. 세가지 고기를 푹 삶아 달인 육수때문에 자주는 못해 먹는다. 집에서는 냉면을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던 아들이 설 후, 회사 회식때 어쩌다 냉면을 맛있게 먹었던지 아내에게 냉면을 해달라고 졸라댄 날이 마침 이날이었다.


오늘 3.1절에도 점심때 냉면을 했는데 시원하게 먹고 하도 추워서 이불속으로 들어가 떨리는 몸을 데워다. 냉면 육수를 현관 밖 장독대에 놓았는데 육수라 그런지 밤새 얼지 않고 무지하게 차겁게 된거다. 겨을 늦추위와 꽃샘 추위가 어우러져 차디찬 냉기가 육수에 흠뻑 베었다. 먹을때도 몸을 덜덜 떨면서 먹었는데 하긴 돌아가신 할아버지 말씀이 이북에서도 겨울에 이불을 뒤집어 쓰고 드셨었다 한다.


냉면은 여름에 시원하게 먹어도 좋지만 한겨울에 바들바들 떨먹서 먹는 겨울냉면의 묘한 맛이 으뜸인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