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이야기/주절주절

아내만 속절없이 바라만 본다

越山 2016. 4. 17. 09:54



한식이 평일이라 토요일인 4월 9일 아내와 함께 버스를 이용하여 할아버지 성묘를 다녀왔다. 모처럼 아내와 데이트 차원?이자 할아버지 묘소 주변의 자그마한 야산을 한바퀴 돌겸해서 산행차림으로 나섰다.  나는 45리터, 아내는 40리터 베낭에 잔득 꾸려 넣은  제사 음식이 이날따라 그다지 무겁게 느껴지지 않는다.




평소 산행시 아내는 30리터 베낭에 무게는 별로지만 부피로 꽉 채워도 무겁다했는데 이날은 40리터 베낭을 살겨운 봄바람처럼 논길을 따라 사부작 사부작 잘도 날아간다. 논주인이 갈아 엎어 놓은 논도 겨우내 답답했던 흙이 새 숨을 쉬는듯 하여 마음마저도 시원하다. 한겨우내 땅속에 움추렸던 새생명들이 슬금슬금 움터 결실을 맺으려는 약동의 봄소리가 들리는듯  싶다.


동물들도 갓 태어난 어린새키들이 귀엽듯 봄역시 계절중에 아기의 고사리 손처럼 예쁘고 귀여운 시즌이 아닌가 싶다. 바라고 원하는 희망이 저절로 품어지는 그런 계절이요 그래서 보다 새로운 시작과 도약으로 멋과 여유가 있는 미래를 간직할 수 있도록 하는 그런 기운이 가득찬 봄이 좋다.



할아버지 묘소로 가는 길 옆에 황소걸음처럼 드문드문 핀 진달래가 수 십년째 반겨준다. 묘소로 오르는 산기슭 입구 얖쪽에 핀 진달래도 비록 말은 못하지만 교감으로 서로 알아 채는듯 싶다. 키는 항상 그 수준이지만 수십년째 사계절을 그자리에서 묵묵히 지켜온 진달래가 고맙기 그지없다.



묘소 주변을 정리하고 제를 올린 후 할아버지께서 남겨주신 제사 음식을 적당히 비우면서 소주 한잔하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주변 산을 한바퀴 도는 것을 취소하고 베낭을 짊어 메고 다른 길로 내려오니 방죽이 새삼스럽게 반겨준다. 초딩시절 할아버지 묘소를 여기로 모실때 저 방죽에서 부터 할아버지 묘소가 있는 야산 중턱까지 동네분들이 줄을 서서 물을 퍼 옮겼다. 방죽을 물끄러미 바라보니 잊어던 그때의 기억이 파릇하게 솟아난다. 



수십년 전의 기억을 더듬고 생각에 잠겨있는 사이에 아내가 저멀리에서 봄을 캐고 있다. 방죽은 갈증을 해소하고 메마름을 방지하며 물속에는 여러 생명을 품고 키워내는 인큐베이터 같은 기능을 하는 존재다. 우리주변에 중요한 존재가치가 있는 것을 쉽게 잊어 버리고 고마움을 망각하지만 방죽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연의 이치에 따라 순응한다.


어려운 시련이 있을때 아무런 말없이 댓가 없이 방죽과 같은 존재가 과연 나의 주변에 얼마나 있을까 생각하니 저멀리 봄을 캐고 있는 아내에 시선이 간다. 지금까지 내옆에서 방죽과 같은 존재 역할을 해준 아내... 마치 방죽의 혜택만 받고 방죽에 대해 아무것도 해주는 것 없이 물끄러미 쳐다만 보는 농부처럼 저멀리 봄의 한복판에 있는 아내만 속절없이 바라만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