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이야기/엉뚱잡썰

김부선과 이재명

越山 2018. 6. 27. 22:51

우리는 사회, 직장, 정치, 학교, 지역, 각종모임 등등에서 사람을 사귀고 알게되다 보면 벼라별 일이 다 있다.

벼라별 일이란 그사람을 믿는 순간부터 자신으로부터 일?이 시작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믿음이 서로 있는 사람은 삶의 자산이 될 수 있고 믿음이 없거나 잃게되면 공동체에서 경제적이나

사회적으로 굉장히 어려운 처지가 될 수도 있다.

요즘 이재명과 김부선의 진실 공방이 장안의 화제다. 운우지정(雲雨之情)
을 갖고 논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들 각자가 주장하는 것을 상식 논리로 따져 보자는 야그다.

물론 법적 물증 증거가 있으면 벌써 한쪽은 개망신과 더불어 법적책임을 져야하겠지만 증거가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김부선이 말로 하는 주장은 이재명에게 책임을 묻기가 사실상 난감하다.

허나 장삼이사와 선남선녀는 정황상 김부선의 주장에 동조하는 편인 듯 싶다. 사회는 항상 약자에게 냉혹했기

때문이지만 오죽하면 딸까지 나서서 증언했겠는냐다. 냉정하게 본다면 다분히 감성적인 동조가 많지만 어느정도

믿음으로 받기들이기에는 큰 부족함은 없을듯 싶다.

하긴 감성으로 본다면 이재명은 무명 정치인에서 잠룡 반열에 올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그래서 이재명은

사이다 문재인은 고구마라 했을까. 그러나 이문제에 대해서는 예전 사이다 맛이 아니듯 싶다.

그특유의 션한 사이다 맛은 온데 갖데 없고 더위 때문인지 사이다 맛이 미지근하고 찝찝하다. 그러니 선남선녀와

장삼이사들이 보기에 믿음이 덜가고 안믿고 하는 이유중에 하나인듯 싶다.

하여 '믿음'이란 뭔가해서 사전을 찾아봤다. 믿음의 사전적 의미는
1. 어떤 사실이나 사람을 믿는 마음
2. 초자연적인 절대자, 창조자 및 종교 대상에 신자 자신의 태도로서, 두려워하고 경건히 여기며, 자비•사랑•의뢰심을 갖는 일
이라고 정의 되어 있다.

여기서 2는 신에 대한 무조건적인 믿음이므로 빼고 1에 대한, 즉 속세 인간과 인간 간의 믿음에 대해 디벼보자.

각자 삶을 살면서 서로 믿고 의지하는 동반자나 스승, 선후배, 친구, 지인 등등은 다 있을거다. 사전 정의 1의

"어떤 사실이나 사람을 믿는 마음"이 믿음이라 했지만 실은 자신의 눈으로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것이 대다수다.

나름 신뢰하는 사람에게 전해 듣거나 혹은 소문, 미디어를 통해 믿음으로 와 닿는 경우도 허다하지만 말이다.

사전적 의미의 신에 대한 믿음 2는 뺀다고 했지만 믿음이란 정의만은 성경에서 빌려와야 되겠다. 왜냐하면

고전중에서 믿음의 속성을 사전보다 더 정확히 표현하고 정의하였기 때문이다.

신약 히브리서 11장 1절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라고 말씀하셨다.

이귀절을 기독교적 믿음이 아닌 우리 생활과 현실에 즉, 신과 사람이 아닌 사람과 사람의 경우에 적용해 보자는거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는 말씀은 좋은 직장에 취직하는 것, 로또에 당첨되는 것, 시험성적 잘 나오기를,

병자는 빠르게 쾌유하여 건강하기를, 좋은 배필만나 결혼하여 행복하게 사는 것, 가족이 건강하는 것, 돈 많이 버는 것,

선거에 당선되는 것 등등이 있을 수 있겠다.

또한 거짓말하고, 사기치고, 뒤통수 치고 아니척 모르는척, 강도 도둑질한 후 완전 범죄를 꿈꾸는 것, 성폭행 성추행

하고도 위선떨며 바른 생활인을 가장하는 것, 자신의 이익때문에 믿음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상대에게 뒤집어 씌우는

작태 등등 옳던 그르던 간에 각자가 성취하고자 하는 혹은 소원하는 그런 마음의 삿된 믿음이 현실로 나타나길을

고대하고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 아닐까 한다.

각 개인이 바라고 원하는 것이 현실로 이루어지길을 믿는 그런 믿음은 모든 개인 마음에 한두가지는 있으리라 본다.

더우기 누명쓰거나, 억울한 경우에는 그 믿음이 몇 곱절 절절히 간절하리라. 반면에 거짓, 허위, 사기, 위선, 파렴치한

행위가 드러나기 않기를 바라는 마음도 이에 못지 않으리라.

그래서 김부선도 이재명도 자신의 믿음?대로 주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거짓말을 하든 뒤통수를 치든 자신이 바라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오직 자신의 생각대로의 실상으로 나타나길을 바라고 원하는 것이

동물과 다른 인간의 못되먹은 원초적 본능일 수도 있다. 우리는 생활에서 이런 경험들이 많은 것을 결코 부인하지 못할것이다.

뒤귀절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는 사실 이해하기 힘든 말이다. 이해를 돕자면 '손톱 밑에 가시드는 줄은 알아도

염통 밑에 쉬 스는 줄은 모른다.' 라는 우리 속담이 있다. 즉 눈앞의 작은 일에는 영리한듯하나 당장 나타나 보이지 않는

큰일이나 큰손해는 미처 깨닫지 못한다는 말이다.

이처럼 완벽한 신이라면 인간의 믿음을 간파하겠지만 인간이기에 눈에 보이는 이미지에 현혹되고 달콤한 말에 미혹되어

상대에 대한 믿음을 착각하거나 오버하는 경우가 많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고, 내 것 주고 뺨 맞고, 달면 삼키고 쓰면 벹는 것이 세상사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의

속은 모른다는 말처럼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기가 그렇게 어렵다.

대천 바다도 건너 봐야한다는 속담은 일이고 사람이고 실제로 겪어 봐야 그 참모습을 알 수 있다는 뜻이지만 어떻게

모든 사람을 다 겪어볼 수 있겠는가 말이다. 안 그런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란 그사람의 삶을 낱낱히 훌터보라는 말이 아닐것이다. 그렇다고 그리스 철학자 디오게네스처럼

대낮에도 증거를 찾겠다고 등불을 들고 돌아다닐수도 없는 노릇이다.

성경 말씀을 빌려왔지만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에 대한 잣대를 노자의 말씀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지지불욕 지지불태

가이장구(知足不辱 知止不殆 可以長久). 즉 만족함을 알면 욕되지 않고, 멈출 때를 알면 위태롭지 않고, 언제나 편안할 수 있다는 말씀이다.

산행도 멈춤의 미학이 있어야 산을 제대로 알게 되듯 인생사도 지지불태 (知止不殆 )하면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가 비로소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닌가 싶다.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는 어떤 일로 망해보고, 당해보고, 온갖 고초와 수난을 겪어보면 그때서 비로소 깨닫는것 같다.

그 전에 잠깐 멈추고 뒤돌아 볼 줄 아는 삶의 지혜가 필요하지 않나 싶은거다.

여기서 감히 두사람을 비난하려는 것이 아님을 밝혀둔다. 김부선과 이재명! 둘 사이의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에 감이 오시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