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이야기/주절주절

아내는 인간 예초기?

越山 2011. 9. 1. 14:57

 

 

지난 한여름의 폭우에 은근히 걱정되는 것이 할아버지 묘소였다.

벌초준비를 다 끝내고 거실로 나와보니 아버지가 방에도 안계신다.

현관 밖에서 담배 피우시는 줄 알고 새벽녘에 출발하려고 자리에 누워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애비냐?"

"예.. 아버지"

"슈퍼 앞으로 나오거라"

"???"

 

슈퍼 앞으로 나가 보니 아버지가 안 보이신다.

둘레둘레 아버지를 찾는데 "애비야~" 하며 아버지 목소리가 들린다.

보니 통닭집에서 쇠주 한잔 하고 계시는거다.

 

한잔하고 자거라 하며 따라 주신다.

그때 마침 아랫 상가 사장이 들어온다.

이상하게 판이 커진다.

 

일찍 일어나 벌초하러 간다고 해도 아버지는 천천히 가라며 쇠주와 안주를 더 시키신다.

이날은 이상하게 피곤하여 평소보다 일찍 자리에 들려고 했는데 묘하게 얽켜? 쇠주 한병정도 마셨다.

 

토요일 아침에 눈을 떠보니 얼추 7시다.

에고... 늦었다.

 

고속도로도 정체되고 지체되어 차량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진다.

경부고속도로에서 영동고속도로 빠져나와 용인으로 돌고 돌아서 할아버지 묘소에 도착하니 벌써 10시가 넘었다.

 

이날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지만 뜨거운 햇살만 내리쬔다.

불과 작년초만 하더라도 나무가 우거진 산들이 미군물류기지 건설때문에 산들이 다 헐리고 깍인다.(↑)

 

(↓)현장 팬스가 시작되는 그 위 나무가 밤나무 밭이다.

돌아가신 작은 외할아버지 댁이 또한 그옆이다.

작은 외할머니를 서울로 모셔가서 이제는 거의 폐가가 되다시피한 집...

감나무와 밤나무로 둘러 쌓인 작은 외할아버지 댁이 어릴적에는 그렇게 크게 보였는데

지금은 무성하게 자란 잡초만 집을 지키고 있다.

 

 

(↓) 소나무 밭의 솔향기가 햇살에 바싹 말라 잔잔누비 같은 바람을 타고 코끝에 와 닿는다.

 

 

(↓) 벌초산행?

아내가 스틱대신 삽자루를 어깨에 짊어 메고 낫두자루와 갈쿠리는 베낭에 꼿고 절단기는 한손에 잡고 간다. ㅎㅎ...

벌초 공구? 다 아내가 갖고 가는 이유는 잔디 한자루를 내가 갖고가기 때문이다.

할아버지 묘소는 40년 이상 자란 소나무와 떡갈나무 때문에 습기가 많아 잔디가 제대로 자라지 못한다.

미군기지 건설때문에 마침 이장한 묘자리에서 잔디를 한자루 떼갖고 가기 때문이다.

 

 

 

(↓) 고가다리는 서평택 나들목 이다.

 

 

(↓) 할아버지 묘소가 저 나직막한 숲속에 계신다.

 

 

(↓) 예년보다 많은 비가 온탓인지 벼가 덜 익었다.

 

 

(↓) 할아버지 묘소...

올 한식때에는 아들 딸과 함께 왔는데 딸은 특근이고 아들은 천안에 일보러 갔다.

하여 아내와 단둘이서 벌초해야 하는데 사방이 나무에 막혀 바람 한점 제대로 들어 오지 않고

늦은 더위에 조금만 움직여도 땀범벅이다.

 

음지라서 고사리과의 풀과 이끼, 어린 아카시아 많이 자란다.

지난 폭우에 할아버지 묘소는 다행이 괜찮다.

묘소 주변에 물골을 만들어 준것이 천만다행인듯 싶다.

 

 

잡초들이 무성한 할아버지 묘소가 아래처럼 변했다.

아내는 인간 예초기다.

시골에서 자라서 낫질 솜씨는 아직도 괘나 쓸만하다.

 

 

(↓) 주변 나무들의 가지치기는 절단기 갖고 하는데 아내는 낫으로 가지를 친다.

나도 이날 처음 알았다.

낫이 조선낫과 외낫이 있다한다.

외낫은 가벼워 풀베기가 좋고 조선낫은 조금 무겁단다.

아래 사진이 조선낫이다.

그래서 조선 낫으로 가지치기를 한단다.

 

아내는 그냥 내리치면 다소 굵은 가지도 단번에 뚝 뿌러지는데 나는 내리치면 나무에 낫이 박힌다.

내공 차이....ㅋ...

 

 

(↓) 외할아버지 묘소는 그냥 예초기로 벌초해서 신발을 벗고 절을 할 수가 없다.

아카시아 잔가지가 예초기에 짤려 나갈뿐 뿌리는 캐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카시아를 살살 들쳐내면 뿌리방향을 알수가 있다.

뿌리채 뽑아야 신을 벗고 제대로 할아버지꼐 예를 올릴 수 있다.

 

한식에는 한겨울 동안 쌓였던 소나무, 떡갈 나무 등의 낙엽을 거두고 여름 장마 대비를 해야한다.

한가위때도 벌초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할아버지 묘소의 흙이 무너진다.

그래서 예초기를 사용하지 못하는 이유다.

벌초하고 흙이 무너지고 허술한 곳은 발과 삽자루를 이용하여 단단하게 해야한다.

이것이 제일 힘들고 고되나 하고나면 뿌듯하다.

 

 

(↓) 할아버님 내년 한식때 뵙겠습니다.

이젠 가자..... 배도 고프고 더위에 허기가 진다.

 

 

(↓) 뭔 유적지????

아~ 공사가 왜 이리 지연되었나 했는데....

 

 

(↓) 아내가 보더니 칡꽃이란다.

칡꽃이 갱년기에 좋다며 다섯 봉오리를 딴다.

 

 

(↓) 무슨 유적지인지 모르겠으나 공사하기 전에 보면 나무들이 우거진 산기슭이었는데...

 

 

(↓) 유적지가 한두군데가 아닌듯 싶다.

위 사진 천막으로 가린 곳이 다 그런 곳인데 아마도 사람이 살았던 흔적같다.

그러면 무진장 오랜된 유적지가 된다는 말씀인데....

 

 

(↓) 스마트폰으로 보니 경부고속도로가 꽉막혔다.

다시 용인쪽으로 가다가 송전 저수지를 들러본다.

마침 아버지가 낚시가자고 하시는데 수상 좌대가격이 얼마인지 몰라 예전 단골집을 찾아가 본다.

 

헐... 6만원....

밑밥과 두어끼니 해결하고  닭백숙 먹으면 이심만원 정도는 들겠다.

하긴 80년대 90년대의 좌대 값을 생각하면 거의 두배가 올랐다.

 

밤낚시때 물기를 잔득 먹은 바람을 맞으며 토종백숙 뜯어 먹는 재미는 안해본 사람은 모른다.

거기에 쇠주 한잔 곁들다 보면 쑤욱 올라오는 캐미찌에 가슴 설래며 대어를 끌어 당기는 그 손맛....

그 손맛을 한동안 외면했던 내가 아버지께 무심했다.

 

 

한가위 잘 쉬고 아버지 모시고 토종붕어 낚으러 와야겠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와 낚시한지 딱 3년하고 보름이 지났다.

토종붕어들아... 그때까지 몸조리 잘하고 때깔나게 있으시라....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