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은 평택에 계시는 할아버지 성묘를 다녀왔다.
오전에 일산에서 급한 일을 보고 집에 들어 오니 12시반....
오후에 아내와 관악산 간딴하게 산행하고 일요일에 할아버지 성묘를
다녀오려고 계획했는데 점심먹고 할아버지 성묘가잔다.
할아버지와 어머니 성묘는 늘 항상 아이들을 데리고 다녀 오곤했는데
늦닷없이 가자는 아내의 성화에 아내와 단둘이서 1시반쯤에 길을 나선다.
성묘갈때는 닭한마리에 녹두전을 필히 준비해서 가는데 이날은
어떨결에 나오다 보니 쇠주한병에 오징어 한마리만 준비해간다.
영 마음이 걸쩍거리는 것이 뭔가 허전하기만하다.
할아버지 묘소 부근에 평택 미군기지 지원을 위한 물류기지가 들어선다.
몇백년 아니 몇천년을 이땅에서 돋아나는 곡식을 먹고 대대로 살아온
원주민들의 땅이 수용되어 수천기의 묘지가 이장을 당했다.
다행히 할아버지 묘지는 수용되는 지역밖에 있어 수용을 당하지 않았지만
몇십년을 성묘하러 왔건만 이렇게 황량하게 변한 산천을 보니 울컥한 마음이 든다.
작년 추석때만 해도 이렇지는 않았는데 할아버지 마음도 착찹하시겠다.
아래 사진은 2007년 4월 1일에 아내와 아들딸과 함께 했던 성묘...
위사진과 아랫 사진은 비슷한 장소에서 찍은 것인데 비교하면
우측의 산에 있는 나무들이 황량하게 벌목되었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할아버지 묘지 정리는 봄과 가을에 두번은 해야한다.
주변의 소나무와 떡갈나무 낙엽이 수북히 쌓여 떼가 자라나지 못하는거다.
갈쿠리로 긁어내고 도랑도 물이 잘 흐르게 파내고 아카시아 잔뿌리도 캐내어야 한다.
예전 할아버지 묘지는 지금의 서울 화곡동에 계셨다.
화곡동이 점차 개발되자 아버지가 어머니 고향으로 모신거다.
아마 초등하교 6학년쯤 되었을떄 이장했는데 그때 이산은 붉은 민둥산이었다.
할아버지 묘지에서 경부고속도로도 훤히 잘보였다.
그때 어린 소나무가 내 무릎정도 밖에 안되었는데 저렇게 자란거다.
지금은 높게 자란 나무들 때문에 하늘만 보인다.
좀 쉬라고 해도 계속 주변정리를 하는 아내....
생강나무 사이 넘어 아내가 가지치기를 하고 있다.
진달래 꽃망울이 열리기 직전이다.
올해는 모든 꽃들이 매서운 추위때문에 개화가 늦는듯 싶다.
논사이에 있는 둔벙에도 개구리알들이 천지삐까리였는데 개발때문인지 개구리 알은 커녕 올챙이 그림자조차 없다.
일년 전만해도 봄기운이 가득차고 뻐글버글했던 생명력을 둔벙에서 전혀 찾아 볼 수가 없다.
생명을 품고 있는 산을 저렇게 깔아 뭉개 놓으니 그 생명들도 함께 사라지고 없어진거다.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약간 좌측으로 소나무가 뺴곡히 있는 곳이 할아버지 묘지가 있는곳...
이 부근의 산은 소나무가 저렇게 쭉쭉빵빵으로 곧게 크는 소나무다.
저런 소나무를 다 잘라 내었으니....
그냥 원주민 혹은 땅소유자가 소나무라도 팔게끔 행정으로 편의를 봐주었으면 좋으련만...
울창하게 자란 나무들을 베어내니 그옛날 붉은 민둥산을 보는듯하다.
차를 세워둔 곳에 복사꽃 몇그루가 화사하게 매년 피었는데 그 나무가 온데간데 없다.
겨우 상상꽃 몇뿌리가 반쯤 뿌리를 드러내 있는 것을 캐서 집으로 갖고 왔다.
예전엔 할미꽃도 지천이었고....
개나리와 진달래는 천지로 깔려 있었다.
이름모를 들꽃이며 야생화가 많았던 산하가 개발의 이름하에 자연이 무참하게 사라진다.
성묘를 마치고 복사꽃 아래에서 아내와 아들 딸들이 나물을 뜯고 추석때면 포도나무를 재배하는 곳에서
꿀맛같은 포도를 맛나게 먹었던 그런 어머니 같은 땅이 사라진거다.
어머니께서 태어나시고 자라신 땅이
저렇게 사라지니 어이 가슴이
아니 아플까...(⊙)
'사는이야기 > 주절주절'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빗방울 소리가 마치 핵융합하는듯한 소리로 들린다. (0) | 2011.04.07 |
---|---|
봄은 도둑처럼 닥아왔는데..... (0) | 2011.04.06 |
봄이여 이만큼만 하여라. (0) | 2011.03.28 |
봄에 피어난 春氷花의 눈물 (0) | 2011.03.25 |
사브작 사브작 봄향기 가득한 쑥. (0) | 2011.03.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