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시이야기/낚시잡썰

화랑농장과 고잔수로

越山 2021. 6. 1. 22:00

안산 고잔역에 내리니 옛날 40여년전 화랑농장과 고잔수로에서 낚시하던 추억이 새록새록 난다. 거의 20년전에 봤던 화랑농장 저수지는 많이 메꿔져 물웅덩이가 되었는데 지금은 다 메꿔는지 어떻게 된지는 모르겠다.

고잔수로는 도랑? 조그마한 갯천으로 변하여 그때보다 좀더 맑은 물이 흐르고 있을뿐 모든것이 바뀌니 옛날 고잔수로를 따라 화랑농장 저수지 가는 흙길이 사라지고 시멘트, 아스팔트로 바뀐 세상이 되었다. 중고딩부터 20대 초반까지 낚시왔던 그길은 온데간데 없고 아련한 추억에 발걸음이 무겁다.

고잔수로가 갯천으로 바뀌어 안산 시민들의 산책로가 되었지만 가만보니 고잔수로가 갖고 있는 특색이 눈에 들어온다. 다 바뀌었도 저 수초만은 끈질기게 살아남은듯 싶다. 옛적 고잔수로는 저런 수초가 수로에 천지삐까리로 널려 있었다. 군데군데 트인 곳에 1칸대나 나나고(일어이지만 1칸대와 1.5칸대 중간) 혹은 1.5칸대 두대로 번찔나게 낚은 붕어들이 다 어디로 갔나. 지금의 잣대로 본다면 애기붕어다. 손구락 크기만한 작은 붕어들이 득글득글했다. 그만큼 붕어자원이 많았던거다.

그때 저 수초를 받침대로 휘젓으면 물먼지가 흙탕물처럼 번졌다. 지금은 물이 흐르는 갯천이되어 맑은 물이었지만 화랑농장에서 흘러내려온 수로가 사리포구까지 잇어졌다. 사리포구에는 또 사리저수지가 있었다. 고잔역 뒷편으로 한참 걸어갔던 기억이 있다. 저수지가 대략 사각형인데 석축으로 이루어지 저수지로 잉어가 많았고 나중에 블루길이 번져 가지 않았던 사리저수지....

 

안양 역전앞 광장에서 고잔행 미니버스, 마이크로버스를 타고 수인산업도로로 가다가 아스팔트길을 벗어나 울퉁불퉁 비포장길을 덜컹거리면 버스 천장에 머리를 몇 번씩 찧다. 그러다가... 그래 맞아.... 안산면허장이 있었다. 그 면허장을 돌아 고잔수로로 갔다. 글을 쓰다가 문득 생각이 난다. 하긴 이러데 왜 면허장인가 했는데 그떄 면허장을 알아 보고 땅을 샀어야 했다. ㅋ....

 

고잔역에서 인천 방향으로는 열차 수인선이 뚝 레일이었다. 아마 안산시를 3~4미터 이상 흙을 갖다 붓지 않았나 싶다. 갯천이 된 고잔수로 위쪽은 다 논바닥이었다. 즉  저 갯천 위 조금 위가 논이었다는 애기다. 지금은 그때보다 훨 높다. 그만큼 안산시 대부분을 흙으로 몇 미터는 메꿔다는 애기다.

 

고잔수로는 아래 사진보다 좀더 폭이 넓었다. 이곳에 오면 손구락 크기의 붕어들을 하루 낚시에 적어도 40~50마리 이상 낚았다. 재수좋으면 뼘치급 붕어 올아오면 환호대작이었다. 겨울낚시는 화랑농장 배수장 부근에서 주로 했던 것 같은데 아마 지금은 흔적도 없을듯 싶다.

고잔역 앞에는 낚시가게 몇 채가 있었다. 떡밥, 지렁이는 필수로 팔았고 밤낚시 도구인 간데라도 빌려주었다. 신분증이나, 시계 등을 맡기고 간데라를 빌릴수 있었다. 카바이트 가스를 이용해 불을 밝히는 간데라는 찌에 한마디씩 부착한 야광테이프를 빛나게 만든 빛이었다. 큰렌턴이 나온후 서서히 자취를 감춰지만 당시에는 간데라가 없으면 밤낚시를 못했다. 그때 길거리 포장마차도 카바이트를 이용하여 어둠을 밝히면서 장사했었다.

 

지금은 낚시도구가 많이 발전되어 상상을 초월하지만 40여년전의 낚시도구로 낚시하라고 하면 요즘 낚시꾼들 할려나 모르겠다. 물론 그떄는 어자원이 풍부하여 붕어들이 연실 낚였지만 지금은 왜래종 덕분에? 낚시대를 십여대 이상을 펴는 풍속으로 변했다. 노지에서 붕어 낚기가 힘들어지면서 관리형 낚시터가 각광받지만 아직까지는 노지가 좋다. 관리형 낚시터는 고밀도라면 노지는 저밀도다. 노지에서 낚지 못해 조과가 꽝일지라도 자연스럽지만 왠지 관리터는 마음이 부자연스럽다. (⊙)